목회칼럼
“멘토를 만나자”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성숙해져 갑니다. 처음부터 성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멘토’가 필요합니다. 멘토란 ‘스승’ 또는 ‘조언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멘토는 지식의
전수만을 목적으로 ‘멘토링(가르침)’을 주지 않습니다.
멘토는 지식과 더불어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지혜와 덕을 함께 제공합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최고 지도자에게는 정책과
전략을 세우도록 기획하여 주는 참모진(Staffs)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국가 최고 지도자들은 참모를 뛰어넘는 ‘멘토’를 필요로 합니다. 참모들은 지식과 지혜의 제공이 그 한계선이지만, 멘토는제공을 넘어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생각과 사상에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들이었던
왕들에게 ‘멘토들’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윗왕에게는 ‘사무엘’이라는 시대의 거목이 멘토였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왕에게 영적인 통찰력을 중심으로
하는 멘토링(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멘토링’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다윗왕은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왕국 이스라엘을 단기간에 중동지역의 패권국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은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제갈량은 촉한의 지도자 유비로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아 유비의 군사(軍師)가 됩니다. 군사(軍師)란 군을 총괄하는 전략가라는 뜻도 있지만, ‘멘토’라는 말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멘토링을 통하여 중국의 후한시대를 이끌어가던 세나라의
왕 중 가장 존경을 받는 덕왕이 됩니다. 멘토링의
결과입니다.
멘토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멘토는 한 인물에 대한 긍정적 미래를 예측하게 만들어 주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멘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시간을 내어
자주 만남을 허락해 주는 사람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멘토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한시대의
거목을 당신의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나를 알고 있지 않더라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더라도 그의 저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를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과거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를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멘토가 누가냐라고 물어보면 현존하는 믿음의 선배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그러나 시대를 풍미하거나 했던 통찰의 대가들을 제시합니다. 제가 멘토로 삼고 있는 그분들은 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불멸의 저서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들이
저술한 책속에는 그들의 생각, 고민, 꿈, 그리고 인생계획이 군구더기 없는 깔끔하게 절제된 말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저의 뇌를 파고들어 저의
사고에 녹아들고 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이번 여름에는 최근에 소천하신 영성의 거두라 할 수 있는 ‘댈라스 윌러드’ 박사를 다시 만나볼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는 더 이상 얼굴과
얼굴을 맞대로 만날 수는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불멸의 명작들(하나님의 모략, 잊혀진 제자도, 마음의 혁신, 하나님의
음성등등)을 통해서 저의 멘토와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어 볼 생각입니다. 물론 그의 저서들은 예전에 다 접해본
서적들이지만 다시 펼쳐보며 혹 스쳐지나간 점은 없는지를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교우들 중 시간과 재정의 여유를 거론하며 독서의 비현실성을
거론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을 뒤바꿀 멘토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투자는 당연한 것입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결코.”라고…
언제나 위대한 멘토링을 기대하며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