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의미 부여하기” (2013년5월5일)

GMC 2013.05.03 10:44 조회 수 : 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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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부여하기

        

저는 일주일에 4일 정도는 걷기 운동을 합니다.  집을 출발하여 동네 주변 약 5마일 정도를 가능하면 빠른 속도로 걷습니다.  5마일을 걷는데 한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혼자서 걷는 운동이 뭐가 재미있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만, 혼자 하는 것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있기도 하고 무척이나 지루하기도 합니다.   저는 걷는 운동을 위해서 먼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상식적인 의미가 아닌, ‘창조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의미 말입니다.  기질적으로 저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생각을 통해 창출되는 영감은 설교와 각종 가르침의 주요 재료가 됩니다.  물론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는 제 오피스나 서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방이 탁트인 집밖을 빠른 속도로 걷노라면 사고의 최적화가 이루어짐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시작한 걷기 운동이 이제는 사고의 최적화를 통한 창조작업으로 그 의미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입니다.  사고의 최적화는 때때로 나를 깊이 있게 돌아보는 자기성찰로 이끌기도 합니다 .  내가 바른 생활을 이루고 있는가?”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걷는 동안 수없이 뇌리를 스치는 질문을 접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을 하게 됩니다.  때로 걷기 운동은 제게 기도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보통 기도하면 제한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 여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공간을 뛰어 넘어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면서 대화식 기도를 하노라면 가슴이 탁트이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게 있어서 적어도 걷는 운동은 단순한 건강을 위한 시간이 아닌 창조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마지못해 해야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결코 시시한 일이란 없습니다.  시시한 일로 치부해 버리니까 시시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시시한 일이라 여겨지는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일은 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기쁨과 감동마저도 경험할 수 있는 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일이라도 찌질한 일, 시시한 일로 평가절하해 버리면 결국 쓸데 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문병란이라는 시인이 쓴 시 입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 마음 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시인은 마당을 쓰는 일을 지구 한 모퉁이를 가꾸는 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어지럽혀진 마당을 미루다 미루다 마지 못해 빗자루를 들고 쓰는 일로 여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당을 지구의 한 모퉁이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다고 감탄해 합니다.  너무도 표현이 멋있습니다.  아니, 하고자 하는 일에 그렇게 훌륭한 의미를 부여한 그 발상 자체가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발견하게 됩니다.  하는 일은 부여된 의미에 따른 결과를 얻게 된다고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절대로 시시한 일이 되어선 안됩니다.  아니 시시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시한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그 모든 일들을 시작부터 시시한 일로 치부해 버림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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