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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이 영성과 결합되면 위대한 출발을 이룹니다”
200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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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연약함에 대하여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연약함을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연약함이 결코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연약성이 드러날 때가 ‘가장 큰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약함 자체는 큰일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약함이 영성과 결합될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심정은 드러난 연약함 때문에 괴로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바로 그순간 예수님은 베드로를 쳐다보십니다. 그 눈빛은 베드로에게 너무도 큰 아픔을 준 눈길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에게 언제나 사랑만을 주신 주님이셨건만, 그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책감에서 드러난 아픔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드러난 수치스러운 연약함 앞에서 베드로의 마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크게 쓰임 받는 아름다운 사도로 거듭납니다.

야곱은 큰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여러 차례 속았던  형 에서는 쓴뿌리를 가지고 동생 야곱을 만나려고 기다립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은 에서를 만나기 이전에 얍복강가에서 야곱과 대면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을 벌립니다.  이 와중에 야곱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에 상처도 입고 이빨도 몇 개 부러졌을 것입니다. 옷도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환도뼈가 내리침을 당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야곱의 모습이 복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을 보면 동생을 향하여 이를 갈던 형 에서가 야곱을 보고 껴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부자되었다고 거들먹거리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야곱의 모습은 다 망한 거지와 비견될 만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자 에서의 마음이 열리고 야곱과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놀라운 반전의 뒤안길에는 야곱의 연약함과 영성의 결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어진 모습을 좋아 할 사람은 업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깨어진 모습은 당당한 모습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깨어진 모습으로 나타날 때 영향력은 행사되기 시작하고 닫힌 마음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할 때 강함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정말 놀랍습니다.

골프공은 표면에 홈이 패고 울룩불룩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왜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지 않고 홈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그것은 그 홈이 골프공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골프공은 매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랬더니 비거리가 130야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연구 끝에 공 표면에 홈을 만들어 놓으니까 신기하게도 그 배 이상 날아갔습니다. 겉에서 보면 그 홈이 흠처럼 보이지만 골프공은 바로 그 홈이 생명입니다. 그 흠 때문에 공기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여 훨씬 더 멀리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때때로 필요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흠을 주십니다. 그것이 인간의 불완전성입니다. 그런 불완전성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놀라웁게도 인간의 그 불완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완전함이 복입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그 불완전함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연약함이 드러날 때입니다.  비교하면 결코 안되지만, 다른 목회자들과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비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교우들을 행복하고 풍성하도록 만들어야 할 위치에 있는 저에게 능력부재의 모습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저 스스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괴로워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능력있는 자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텐데… 어찌 저는 그렇게 연약하기만 할까… 이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하지만 그 연약함의 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연약함을 허락하심은 그 연약함에 대한 긍정적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이기에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큰일을 위한 도구로 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감추려 하지 마십시오.  연약한 자가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되기에 연약함은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모하는 능력을 영성이라 합니다.  연약할수록 영성과의 결합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큰일을 이룹니다.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목사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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